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네모토 토모아키 (문단 편집) === 연속 출장 기록, 그 빛과 그림자 === 그 중에서도 가장 특기할 기록이라면 '''연속 출장 기록'''인데, 1999년 7월 21일부터 2010년 4월 17일까지 1,492경기, 13,686이닝 동안 기록한 전(全) 이닝 연속 무교체 출장 기록은 세계 기록이며 이 기록이 중단된 후에도 2011년 4월 15일까지 1,766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달성했다. 대한민국 최장 기록이 [[최태원(야구)|돌격대 출신 철인]]이 기록한 1,009경기[* 현역 중에는 [[황재균]]의 618경기. 2016 시즌 도중 부상으로 기록이 끊어졌다.]이니 차원이 다른 셈. 게다가 그 돌격대 출신 철인도 막판에는 대타나 대수비 등으로만 나왔으니 전 이닝 연속이랑은 거리가 멀었다. 어쨌든 이는 일본의 철인 [[기누가사 사치오]]에 이은 NPB 역대 2위. 이 기록을 달성하는 와중에 왼손에 골절상을 입은 적이 있는데, 그 상태에서도 출장해 오른손만으로 스윙해 2안타를 날렸다든가, 후두부에 데드볼을 맞고 쓰러졌다가 다음 타석에 홈런을 날렸다든가 하는 전적이 있다. 기록에 의하면 데드볼을 맞은 다음 타석에는 타율이 6할을 넘었다고 한다. [[호시노 센이치]] 전 감독 왈, '가네모토는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을 때 120%의 능력을 발휘한다.' 그야말로 정신이 육체를 초월하는 인간으로 여겨지는 선수였다. 아예 대놓고 '철인'으로 캐릭터화할 정도. [[파일:external/www.suruga-ya.jp/g6621664.jpg]] 한 번은 시즌 중 부상을 입어 [[데이비드 베컴]], [[웨인 루니]]가 사용했던 산소캡슐을 친히 이용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2010년에는 시즌 초기부터 어깨 부상으로 신음하며 제대로 공조차 던지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결국 4월 18일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요코하마]] 원정 경기의 선발 멤버에서 제외됨으로써 1999년 7월 21일부터 계속된 '연속 풀 이닝 출장 기록'은 '''1,492경기'''에서 종지부를 끊게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NnCx8JW4Dc|이날 한신의 스타팅 라인업 발표 장면]], 4번 타자에 [[아라이 타카히로]]가 불릴 때부터 장내에 비명이 들리며 서서히 동요하더니, 사실상 마지막 8번 타자에 [[좌익수]] 카츠라기 이쿠로[* 1977년생으로 나름 장타력을 가진 외야수였으나 112안타, 14홈런을 기록한 2001년과 71안타, 9홈런을 기록한 2003년을 제외하면 주전으로 나온 해는 없었다. 원래는 오릭스였고 한신으로 이적한 후에는 주로 대타로 나왔다. 2008년에 땜빵 주전을 먹으면서 100경기 이상 나오기도 했지만 일반적인 포지션은 대타 요원. 2011년까지 뛰고 은퇴해서 닭꼬치집을 열었다.]가 불리며 카네모토의 선발 미출장이 확정되는 순간 장내의 비명과 동요가 절정에 다다른다. [[김기태(1969)|김기태]][* 당시 [[김기태(1969)|김기태]]는 [[이승엽]]을 따라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들어와 이승엽의 보조 타격코치를 하다 2010년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에서 코치를 하고 있었다.]가 연속경기 출장을 이어 가는 이유를 묻자 관중석을 가리키며 "난 저 분들을 위해 뛸 의무가 있으며,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뿐이다" 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일단 이 시합부터는 주로 [[대타]]로 출장하는 것으로 '연속 출장 기록'은 계속 이어갔다. 하지만 2010 시즌은 [[규정타석]] 미달. 규정타석 미달로 전 경기 출장한 사례는 NPB 역사상 처음이었다. 그러나, 2011년 시즌이 개막한 지 3경기 만인 4월 15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개막일이 4월 중순으로 밀렸다.]에 연속 출장 기록은 중단되고 말았는데, 이날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반테린 돔 나고야|나고야돔]] 원정경기 8회초 2사 주자 1루 상황에서 [[대타]]로 출장했으나 1루 주자가 도루자를 당하면서 타석이 증발, 이어진 8회말에 수비에 들어가지 않고 그냥 빠지면서 기록상 출장하지 않은 것으로 처리되어 대기록에 마침표를 찍었다. 야구 규칙에서는 대타는 출루 또는 아웃으로 타격행위를 완료하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수비수로 투입이 되어야 경기 출장이 인정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규칙의 빈틈을 탓하거나 도루하다 죽은 주자를 갈구지 않았고, 기록이 멈춘 것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인터뷰를 했으니 기록중단에 크게 미련을 가지지는 않는 듯하다. 항간에는 구단 높으신분들과 감독의 상의 하에 대주자에게 몰래 지시를 내려 무리한 도루를 지시해서 점점 활용도도 떨어지고 엔트리 낭비를 초래하는데 연속 출장을 이어가는 카네모토의 기록을 이쯤에서 엎어버리려고 했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이로써 달성한 기록이 1,766경기 연속 출장. 사실 가네모토의 몸 상태는 2009년 이후부터 엉망이었던 데다 2010년부터는 송구 자체가 안 될 정도로 어깨 상태가 심각했다. 한때는 30도루를 기록했던 발도 엄청나게 느려져서 수비 범위도 극히 좁아졌고, 어떻게 플라이를 잡거나 [[좌익수]] 앞에 떨어진 공을 잡아도 백홈은 커녕 고작 3루까지도 공을 던질 수 없어 [[토리타니 다카시|유격수]][* 공교롭게도 하술하듯 카네모토가 감독을 맡던 시절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고 기량이 크게 저하했음에도 연속출장 기록 때문에 계속해서 출장하며 팀 전력의 구멍이 되는 수모를 반복했다가 2020 시즌부터는 [[치바 롯데 마린즈]]로 이적했다.]가 중계 플레이를 해야 했을 정도([[https://www.youtube.com/watch?v=ehZ35_XlTq8|참고]]). 60%도 안되는 몸 상태로 계속 연속출장을 시키는 것에 대해서 물론 대다수 팬들이야 "연속출장 끊기면 안돼!" 를 외쳤지만, 객관적으로 보는 소수의 팬들은 "이쯤에서 연속 출장을 중단하고 수술한 뒤 확실히 재활해서 오래오래 선수생활 하는 방향으로 가자"는 말도 있었다. 물론 가네모토의 연속출장이 상징하는 그것이 너무 강했기에 적극적으로 표명 안 했을 뿐이다. [[지명타자]]가 있는 [[퍼시픽 리그]]였으면 그냥 붙박이 [[지명타자]] 시키면 끝났을 문제였지만, 한신의 소속 리그는 지명타자가 없는 [[센트럴 리그]]. 게다가 지명타자로 출전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 게 가네모토의 경우 연속'''경기'''출장이 아니라 연속이닝출장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지명타자로 돌리면 연속 이닝출장 기록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실제로 한신 구단 측이 지명타자제도를 쓸 수 있는 [[인터리그|교류전]] 기간 중에 가네모토의 몸상태를 고려해서 지명타자로 출전시키는 방법을 고려하고 리그 사무국 측에 지명타자로 출전하는 경우 연속이닝출장 기록이 인정되는지 문의했으나 사무국 측으로부터 "인정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듣고 할 수 없이 교류전에서도 [[좌익수]] 선발로 출전을 시켰다. 결국 꾸역꾸역 좌익수로 선발 출전하며 전 이닝 연속 출장기록을 이어갈 수 밖에 없었다. 수비부담이 적은 [[1루수]]로 돌리는 방법도 있었으나 가네모토 본인이 선수생활 내내 외야수였고 아무리 1루 수비가 부담이 덜하다고 해도 결코 현대 야구의 1루수가 결코 내야수의 송구만 받는 단순한 포지션이 아니라서 그렇게 생각처럼 뚝딱 수비위치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선수생활 늘그막에 갑자기 1루수로 전환한다고 결코 수비부담이 주는 것도 아니고, 잘못하면 1루에 커다란 구멍을 만드는 결과만 초래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1루에는 FA로 이적해 온 같은 팀 출신의 후배 [[아라이 타카히로]]와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던 용병 [[크레이그 브라젤]]이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